그림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
누구에게나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해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을 것이다.
갖고 있지 않은 차, 집 같은 물건이 될 수도 있고, 그의 높은 학점, 뛰어난 영어실력 같은 것도 될 수 있다. 나도 당연히 그런 것들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술에 대한 관심,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다른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갖고 싶은 능력이고 분야였다.
예전 학교 다닐 적을 떠올려 보면, 일주일에 한번씩 열리는 미술시간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몇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첫번째는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 선생이 내주는 과제가 있으면 열심히 참여하고, 또 곧잘 해낸다. 두번째는 그딴거 관심없는 애들인데, 사실 굳이 이 수업이 미술시간이 아니었어도 얘네들은 졸린 눈으로 끄적이고 있었을 거다.
나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중간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제 딴에는 노력하는데 노력하는 과정에서 열망에 못미치는 실력을 보게되고, 그 실력을 메울 수조차 없는 형편없는 노력 때문에 실망스런 결과물을 보게 되는, 그런 위치다. 과제가 주어지면 꿈에 가득찬 생각들이 떠올라 신나게 기획해보지만, 가면 갈수록 부딪히면서 생각의 깊이는 얕아져 결국엔 머릿속 한켠으로 치워져버린다.
실력이 형편없음에도 그림 그리기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것은, 그림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운좋게도 어릴적 미술관을 많이 가봤고, 운좋게도 이것에 관심이 생겼고, 운좋게도 지금까지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머리는 그닥 좋지가 않았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많은 것을 느끼지는 못했고, 그냥 어떤 인물이나 대상이 좋아서, 색이나 질감이 좋아서 한참 바라봤던 것 같다. 정말로 1차원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거다.(아직도 다른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나보단 더 깊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대중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은 마이너한 미술품들을 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미술책에서 본것, 어디서 들어본 것에만 관심이 있다. 마그리트, 고갱같은 것들.
좋아라는 하는데 이게 왜 좋은지 모르니, 관심사는 자연스레 그림 자체보다 그림을 해설하는 사람들에게 옮겨졌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그들은 생각하고 있으니까. 미술사를 쉽게 풀어놓은 서적, 어떤그림 주제에 대해 해설해 놓은 것들, 이런 것들을 찾아 읽는게 고달픈 학창생활을 달래줄 수많은 취미생활 중에 하나였다. 예를 하나 들자면 '무서운그림'이라는 책이 있는데, 여기에는 작가가 생각하기에 무서운 그림들을 쫙 나열해놓고 이게 왜 무서운지 그림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설명해놓았다. 이걸 보면서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에 대한 한가지 답을 얻게 되었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생각없이 거기에 서있었는지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미술관 찾아간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관심을 끊은 것은 아니다. 애매한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 나는, 그림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도 아주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미술관을 직접 찾아가지도 않거니와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조차 아닌 나는 가끔씩 심심할때면 화가 이름을 검색하고, 이 사람이 어떤 비참하거나 화려한 인생을 살았는지 들어보고, 그림도 같이 본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구글을 이용하면 꽤 선명한 그림을 볼 수가 있다. 마그리트를 좋아하고, 고갱도 좋아하고, 어디선가 본적 있는 오딜롱 르동도 좋아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고, 그냥 먼발치에서 좋아한다는 얘기를 강조하고 싶다.
가끔씩은 이런 '지속적으로 먼발치에서 바라보기' 자세가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러니까 여기에 이런 글을 적는 거겠지) 만약 내가 미술사에 해박하다면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나의 박식함을 뽐낼 수도 있을것이고, 만약 내가 이것에 무지하다면 이걸 바라볼 시간에 다른 방면에서 내게 도움을 줄 무언가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나의 위치, 내가 선택한 것이긴 하지만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썩어가고 있을 나의 정신이 이런 작은 행동을 통해 정화되고 있진 않을까. 아님 그들의 독창적인 생각이나 능력을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 티끌만한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획기적인 생각을 하고 싶은 나의 구체적이지 못한 욕망이 이렇게 관심없는듯 바라보는 행동을 통해서 발현되는 걸까.
가끔 주변에 그림을 잘그리는 사람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마구 하게 된다. 언젠가 룸메이트가 나에게 그림 선물을 해주었을 때 그랬고, 동아리에서 그림연습을 하는 친구를 바라보면서 그랬다. 나에게 동물을 그린 선물을 해준 것이 너무나도 감격적이어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림을 그려 선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억은 잊는 편이 낫겠고, 동아리에서 그림연습을 하는 것을 본건 불과 얼마전인데, 한창 필에 꽂혀 친구 그림연습책을 빌려 연습을 한창 하고는, 금방 실증이나 이제는 이러고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이 글의 결론을 어떻게 하면 그럴듯하게 내릴 수 있을까. 사실 나에게 '깊게 파보지 않고 얕은 상태에서 관심을 유지하는 행동'에 대한 대상은 비단 '그림그리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우주, 천문, 중국어, 음악 등등. 내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이런 발담그기는 도움이 될런지는 잘 모르겠다. '발담그기' 행동이 앞서 생각해봤던 것처럼 심리의 심연에서 발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깊게 파고들어 생각해보아야 할까. 한정된 시간 속에서 깊게 파고들어볼 기회가 적다는 것도, 지금 내가 무엇을 발담가보지도 않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망설이고 있다. 무수하게 많은 구멍들 중 하나만을 들어가야 하는 입장에 놓여 다시는 나오지 못할까봐 두려워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분명 다가오고 있다.
갖고 있지 않은 차, 집 같은 물건이 될 수도 있고, 그의 높은 학점, 뛰어난 영어실력 같은 것도 될 수 있다. 나도 당연히 그런 것들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술에 대한 관심,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다른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갖고 싶은 능력이고 분야였다.
예전 학교 다닐 적을 떠올려 보면, 일주일에 한번씩 열리는 미술시간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몇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첫번째는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 선생이 내주는 과제가 있으면 열심히 참여하고, 또 곧잘 해낸다. 두번째는 그딴거 관심없는 애들인데, 사실 굳이 이 수업이 미술시간이 아니었어도 얘네들은 졸린 눈으로 끄적이고 있었을 거다.
나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중간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제 딴에는 노력하는데 노력하는 과정에서 열망에 못미치는 실력을 보게되고, 그 실력을 메울 수조차 없는 형편없는 노력 때문에 실망스런 결과물을 보게 되는, 그런 위치다. 과제가 주어지면 꿈에 가득찬 생각들이 떠올라 신나게 기획해보지만, 가면 갈수록 부딪히면서 생각의 깊이는 얕아져 결국엔 머릿속 한켠으로 치워져버린다.
실력이 형편없음에도 그림 그리기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것은, 그림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운좋게도 어릴적 미술관을 많이 가봤고, 운좋게도 이것에 관심이 생겼고, 운좋게도 지금까지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머리는 그닥 좋지가 않았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많은 것을 느끼지는 못했고, 그냥 어떤 인물이나 대상이 좋아서, 색이나 질감이 좋아서 한참 바라봤던 것 같다. 정말로 1차원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거다.(아직도 다른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나보단 더 깊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대중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은 마이너한 미술품들을 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미술책에서 본것, 어디서 들어본 것에만 관심이 있다. 마그리트, 고갱같은 것들.
좋아라는 하는데 이게 왜 좋은지 모르니, 관심사는 자연스레 그림 자체보다 그림을 해설하는 사람들에게 옮겨졌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그들은 생각하고 있으니까. 미술사를 쉽게 풀어놓은 서적, 어떤그림 주제에 대해 해설해 놓은 것들, 이런 것들을 찾아 읽는게 고달픈 학창생활을 달래줄 수많은 취미생활 중에 하나였다. 예를 하나 들자면 '무서운그림'이라는 책이 있는데, 여기에는 작가가 생각하기에 무서운 그림들을 쫙 나열해놓고 이게 왜 무서운지 그림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설명해놓았다. 이걸 보면서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에 대한 한가지 답을 얻게 되었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생각없이 거기에 서있었는지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미술관 찾아간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관심을 끊은 것은 아니다. 애매한 인생을 살아오고 있는 나는, 그림이라는 분야에 대해서도 아주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미술관을 직접 찾아가지도 않거니와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조차 아닌 나는 가끔씩 심심할때면 화가 이름을 검색하고, 이 사람이 어떤 비참하거나 화려한 인생을 살았는지 들어보고, 그림도 같이 본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구글을 이용하면 꽤 선명한 그림을 볼 수가 있다. 마그리트를 좋아하고, 고갱도 좋아하고, 어디선가 본적 있는 오딜롱 르동도 좋아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는 절대로 아니고, 그냥 먼발치에서 좋아한다는 얘기를 강조하고 싶다.
가끔씩은 이런 '지속적으로 먼발치에서 바라보기' 자세가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러니까 여기에 이런 글을 적는 거겠지) 만약 내가 미술사에 해박하다면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나의 박식함을 뽐낼 수도 있을것이고, 만약 내가 이것에 무지하다면 이걸 바라볼 시간에 다른 방면에서 내게 도움을 줄 무언가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나의 위치, 내가 선택한 것이긴 하지만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썩어가고 있을 나의 정신이 이런 작은 행동을 통해 정화되고 있진 않을까. 아님 그들의 독창적인 생각이나 능력을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 티끌만한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획기적인 생각을 하고 싶은 나의 구체적이지 못한 욕망이 이렇게 관심없는듯 바라보는 행동을 통해서 발현되는 걸까.
가끔 주변에 그림을 잘그리는 사람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마구 하게 된다. 언젠가 룸메이트가 나에게 그림 선물을 해주었을 때 그랬고, 동아리에서 그림연습을 하는 친구를 바라보면서 그랬다. 나에게 동물을 그린 선물을 해준 것이 너무나도 감격적이어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림을 그려 선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억은 잊는 편이 낫겠고, 동아리에서 그림연습을 하는 것을 본건 불과 얼마전인데, 한창 필에 꽂혀 친구 그림연습책을 빌려 연습을 한창 하고는, 금방 실증이나 이제는 이러고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이 글의 결론을 어떻게 하면 그럴듯하게 내릴 수 있을까. 사실 나에게 '깊게 파보지 않고 얕은 상태에서 관심을 유지하는 행동'에 대한 대상은 비단 '그림그리기'에 머물러 있지 않다. 우주, 천문, 중국어, 음악 등등. 내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이런 발담그기는 도움이 될런지는 잘 모르겠다. '발담그기' 행동이 앞서 생각해봤던 것처럼 심리의 심연에서 발현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깊게 파고들어 생각해보아야 할까. 한정된 시간 속에서 깊게 파고들어볼 기회가 적다는 것도, 지금 내가 무엇을 발담가보지도 않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망설이고 있다. 무수하게 많은 구멍들 중 하나만을 들어가야 하는 입장에 놓여 다시는 나오지 못할까봐 두려워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분명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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