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날씨

분명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지나가고 있음에도 마음 한켠에는 답답함이 자리잡고 있을 때가 있다.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답답함이 지워질리도 만무하고 그러길 내가 바라지도 않지만, 하도 마음이 답답해서 아무도 모르는 이런 가상의 공간에 실타래처럼 곳곳에 퍼져있는 생각들을 한곳에 뭉쳐 코딱지 튕기듯이 던져버린다면, 내 마음은 후련하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글을 쓴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겉으로는. 일단 원하는 학과를 정했다.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괜찮은 결과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적어도 들인 노력에 비해 배신당하지는 않는 진로를 택한 것에 대해 나는 지금 굉장히 만족스럽다. 나만 열심히 하면 되는 길. 변수가 하나뿐인 것이다. 결정에 장애가 있는 성격 탓에 이런 탄탄대로는 나를 한 곳으로 몰아세우기 충분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고 있다. 엄청나게. 원래는 수업을 잘 듣지 않는 편인 나는 요새 교수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다 듣고 있다. 예습은 원래 바라지도 않았고, 복습은 언제나 꾸준히 하고 있다. 요새는 숙제가 나오면 바로바로 끝낸다. 과제가 있으면 제출 날짜 바로 전날에 허겁지겁 해치우던 지난날이 이해되지 않는 요즘의 나다. 심지어, 무엇보다 내 옆에는 내게 의지하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 비록 만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느낌이 나로 하여금 의지하게 만든다. 내 옆에 나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요새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녀의 존재와 이로 인해 행복한 나의 존재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 기분이 우울한 것은, 분명 이놈의 날씨 탓이다. 반복된 추운 겨울에 익숙했던 내가 이렇게 화창한 햇살을 마주치게 될줄 누가 알았을까.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바람 하나 없는 날씨. 오늘은 겨울왕국에 나온 눈사람 올라프가 여름을 상상하며 노래하던, 그 날씨였다. 날씨 탓에 주변은 조용했고, 평화로웠으며, 이 땅의 모두는 오랜만에 찾아온 공기를 만끽했다. 그리고 나는 우울했다. 갑자기 날씨...

그림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

누구에게나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해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을 것이다. 갖고 있지 않은 차, 집 같은 물건이 될 수도 있고, 그의 높은 학점, 뛰어난 영어실력 같은 것도 될 수 있다. 나도 당연히 그런 것들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술에 대한 관심,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다른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갖고 싶은 능력이고 분야였다. 예전 학교 다닐 적을 떠올려 보면, 일주일에 한번씩 열리는 미술시간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몇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첫번째는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 선생이 내주는 과제가 있으면 열심히 참여하고, 또 곧잘 해낸다. 두번째는 그딴거 관심없는 애들인데, 사실 굳이 이 수업이 미술시간이 아니었어도 얘네들은 졸린 눈으로 끄적이고 있었을 거다. 나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중간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제 딴에는 노력하는데 노력하는 과정에서 열망에 못미치는 실력을 보게되고, 그 실력을 메울 수조차 없는 형편없는 노력 때문에 실망스런 결과물을 보게 되는, 그런 위치다. 과제가 주어지면 꿈에 가득찬 생각들이 떠올라 신나게 기획해보지만, 가면 갈수록 부딪히면서 생각의 깊이는 얕아져 결국엔 머릿속 한켠으로 치워져버린다. 실력이 형편없음에도 그림 그리기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것은, 그림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운좋게도 어릴적 미술관을 많이 가봤고, 운좋게도 이것에 관심이 생겼고, 운좋게도 지금까지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머리는 그닥 좋지가 않았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많은 것을 느끼지는 못했고, 그냥 어떤 인물이나 대상이 좋아서, 색이나 질감이 좋아서 한참 바라봤던 것 같다. 정말로 1차원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거다.(아직도 다른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나보단 더 깊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대중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은 마이너한 미술품들을 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미술책에서 본것, 어디...